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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여행 이야기/2009 Austria

쉔부른 궁전(schloss schonbrunn)과 바로크 양식

쉔부른 궁전(schloss schonbrunn)과 바로크 양식


쉔부른 궁전...

쉔부른 궁전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오는곳이다.
"아름다운 샘"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휴양지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했을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며, 이후에 각종 행사에 등장하며 사람들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고 지은 궁전이라고 한다. 방이 무련 1400개나 된다. 이중에 40여개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정문에서 궁전 옆을 찍은 모습

사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궁전치고 화려하지 않고, 크기만 큰 모습에 약간 실망도 하게 될 수도 있다. 무슨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어떤 공사인지는 모르겠고.

마리 앙뜨와네트...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 일명 명품병에 걸려 뇌에 이성이라고는 없는 여자.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한 여자로서, 프랑스혁명때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이 "빵을 달라"라고 쎄가 빠지도록 소리치니까 하는 말이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역시 평민들은 어리석어"
(사실 케익은 와전이고 브리오슈라고 한대요 http://likenoone.tistory.com/455?srchid=BR1http%3A%2F%2Flikenoone.tistory.com%2F455)

프랑스 혁명때 남편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는 참수형을 당한다.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학비 없으면 장학금 받으면 되지" - 이명박 -

어째든 허영과 사치도 좋지만 제발 대화와 상식이 시대를 막론하고 안통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정면으로 보이는 궁전 옆으로 돌아가면 정원이 하나 나온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서 만들었다던 정원 그리고 소녀 앙뜨와네트가 소년 모짜르트와 뛰어 놀았다던 정원

정원을 돌아 궁전 뒤로 돌아가면 넓은 정원이 나오는데 이곳 정원은 모든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물론 궁전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하지만..
그래서 많은 빈 시민들은 이곳에서 조깅도 하고 산책도 하곤 한다. 

조깅하는 시민들...


나무 좀 봐라..
무슨 군대도 새가 날다가 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대로 서거 하시겠다.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것도 바로크 양식인가?

 바로크양식.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 르네상스 양식에 비하여 파격적이고, 감각적 효과를 노린 동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본래는 극적인 공간 표현, 축선(軸線)의 강조, 풍부한 장식 따위를 특색으로 하는 건축을 이르던 말로, 격심한 정서 표현을 가진 동시대의 미술, 문학, 음악의 경향까지 이른다.  출처 : 다음 국어사전


바로크 건축
르네상스 이후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 회화적이고 극적인 복잡한 굴곡과 곡선의 움직임이 풍부하며, 건축물의 안팎은 금빛의 눈부신 조각이나 그림으로 장식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베르사유 궁전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출처 : 다음 국어사전

고등학교에도 무슨 르네상스네, 중세네, 바로크네, 고딕이네 하는 거 모르고 살았는데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 바로크 양식이다. 


다 필요없고 바로크는 좌우대칭, 화려함 이 두가지만 보면 알 수 있다.

아 그리고 저 건물 정중앙 꼭대기 보면 독수리가 한마리 조각되어 있는데 그 독수리 잘 기억해야 한다. 

보라!! 저기 보이는 건물.
저 건물이 궁전 뒷편에 있는 건물인데, 딱보기에 반 짤라서 접으면 접히것지?
여기서는 잘 안보이는데 가까이 가보면 금테 둘렀어..

좌우대칭, 금테(화려) --> 바로크 양식 건축물 되겠다.

저 건물은 왕실가족들이 아침식사하러 가는 곳이라 한다. .
원래는 글로리에테(Gloriete) 18세기 중엽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그리스 신전 양식의 전승비라고 한다. 

아까 아침 처먹는 곳 건물에 독수리와 지금 궁전을 보면 궁전 정중앙에도 독수리 한마리가 있다. 그 두마리의 독수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의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침 먹는 곳에서 궁전을 찍어봤다. 
좌우대칭은 바로크 양식 건축물 되겠다.

왕족들이 조찬하시는 곳 되겠다.


쉔부른 정원의 나는 도저히 알수 없는 꽃나무...(식물이름 외우는게 너무 어려워)

바로 그 독수리

정원 모습들...



그 조찬회동 하는 곳에서 내려오면 궁전 가기전 중간쯤에 분수가 하나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의 동상이 있다.

분수대에서 찍은 궁전의 모습


별장답게 궁전에 동물원도 있네...그리 크지는 않다고 해서 구경은 하지 않는 걸로...

합스부르크 왕조의 족보

궁전 내부는 여행객들을 위해 방이 번호로 표기되어 있는데 공개된 방을 모두 들러보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판단에 액기스만 골라서 관광하기로...사진을 못찍게 해서 사진은 없다. 

먼저, 평면도를 보자




21, 22번방 대 갤러리와 소 갤러리

길이가 40미터 이상이고 폭이 거의 10미터에 달하는 대 갤러리는 황제의 가족들이 국내외 귀빈들과 함께 무도회나 리셉션 등을 개최했던 장소. 

크리스탈 거울들과 금박의 세공장식, 그리고 프레스코들로 이루어진 이 홀은 로코코 시대의 예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개의 천장 프레스코들은 이탈리아 화가 그레고리오 굴리엘미의 작품으로서 마리아 테레지아 통치하에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평화, 번영과 통치, 그리고 군사력을 표현하고 있다. 
1901년부터 이방에 전기가 들어왔으며 현재 샹들리에의 전구 1104개가 내부를 아름답게 밝혀주고 있다. 1961년에는 바로 이장소에서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와 소련의 흐루시쵸프가 역사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대 갤러리 옆에 위치한 소갤러리는 가족의 축일이나 생일파티 때 사용되었다. 

 
23, 24 중국식 원형 별실과 타원형 별실

소 갤러리의 양쪽에 중국식 별실들이 있다. 왼쪽이 타원형이고 오른쪽이 원형. 마리아 테레지아는 중국과 일본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별실안에는 값비싼 중국산 래커 무늬판들과 함께 청색, 백색 도자기들이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화려한 바닥장식 또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두 별실들은 오락실과 회의실로 쓰인다고 한다.


25. 카루쎌방

카루쎌, 즉 승마 퍼레이드방은 두개의 큰 그림 중 왼쪽 그림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그림에서 승마 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귀부인들을 볼수 있다. 이것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라하를 탈환한 기념으로 1743년 호프부르크의 스페인 승마학교에서 개최한 행사였다고 한다.
그림 중앙에 마리아 테레지아 자신도 흰색 리피차너를 타고 궁정의 귀분일들을 이끌고 있고 그림의 왼쪽 초상화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칼 6세이고 오른쪽은 그녀의 아들 요셉 2세의 모습이다.

26. 궁정 연회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궁정 연회홀에서는 소규모의 연희들이 개최되었다. 이홀을 장식하고 있는 일련의 그림들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요셉2세와 부르봉가의 공주인 이사벨라 폰 팔마의 결혼 축하연을 보여준다. 가장 큰 그림은 98대의 마차를 거느린 이사벨라의 신부 행렬로서, 전 유럽에서 참석한 최고 귀족들의 마차에는 그들 가문의 문장들이 뚜렷이 그려져 있다.
40년간 합스부르크를 통치한 위대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초상화 오른쪽에 와족의 음악회 장면 그림을 보면 플라스틱 네모 안에 작은 소년이 있는데 이 소년이 바로 어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모습이다. 쉔부른 궁전에서 행한 훌륭한 연주로 테레지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모짜르트는 어린시절 궁전 정원에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 마리 앙뜨아네트와 어울려 놀기도 했다고 한다.


27. 말들의 방

함스부르크 왕국에 있어서 좋은 혈통의 말들은 왕가의 우아함과 화려한 권위를 나타내기에 좋은 수단이었다. 사냥의 그림 양 옆으로 그려진 우수 혈통의 말들이 그 사실을 알 보여준다. 이 방은 황제와 군 장교들이 식사를 했던 곳으로서 식기들은 옛날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28. 청색 중국 살롱 

18세기에 손으로 그림 중국풍의 한지벽지 그림들을 19세기초에 붙여 장식한 것. 세계 제 1차 대전 패전후에 바로 이 방에서 협상들이 열려 마지막 황제 칼 1세는 결국 1918년 11월 11일에 국무포기선언을 하게 된다. 640년간 지속되었던 합스부르크가의 통치가 마감된 것으로 그 다음날로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칼 1세 화제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그는 1922년에 3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의 부인 치타는 1989년에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비로서 황릉에 묻혔다.


29. 뷔에-락-방

마리아 테레지아 남편 프란츠 슈테판은 1765년에 갑자기, 그것도 둘째 아들의 결혼 피로연 도중에 사망합니다. 그 후에 그를 사랑했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 방을 꾸몄다. 북경에서 직접 수입한 래커 판들을 오두나무 벽판 안에 집어 넣고 황금 테두리로 장식 했으며, 검은 미망인 옷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방 중앙에 있는 그림이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고 이 그림 오른쪽에 요셉 2세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동생 레오폴트 2세의 초상화이다.

30. 나폴레옹 방

나폴레옹은 1805년과 1809년, 두번에 걸쳐 빈을 점령하였을 때, 예전의 마리아 테레지아 침실이었던 방에서 거주하였다. 1801년, 프란츠 2세 또는 1세 황제는 자신의 딸 마리 루이제와 나폴레옹을 혼인시킴으로써 두 권력자 사이에 마침내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했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마리 루이제는 나폴레옹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함께 빈의 궁전으로 돌아왔다. 어린 프란치 왕자로 칭해졌단 나폴레옹의 아들은 정치적으로 재제된 채 빈 궁전에서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다. 다른 모든 합스부르크의 남잘들처럼 그도 가문의 전통에 따라 서민들의 수공업을 익혀야 했다. 그림은 그가 어린 정원사로 일하는 것을 보여준다. 콘솔 테이블 위의 종달새는 그가 사랑하던 애완동물이었다. 그는 1832년 겨우 21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사망당시의 그의 모습은 석고 흉상으로 남아 있다.


31. 도자기방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 작은 방을 오락실이자 작업실로 사용했다. 청색과 백생으로 그려진 목각 테두리 작품은 마치 도자기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 전체 공간을 천장까지 덮고 있다. 그 안에 총 213개의 푸른 묵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프란츠 슈테판과 그의 자녀들이 제작하여 서명까지 해놓은 것이다.

32. 백만 루블의 방(백만금의 방)

이 궁전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방들 중 하나인 이 방의 이름은 아주 귀하고 값비싼 장미목으로 벽장식을 만든데서 유래되었다.
로코코 양식의 황금 장식틀 안에는 인도 페르시아의 세밀화들이 들어 있다. 이것은 황제의 가족들이 그림들을 직접 짤라 꼴라쥬 기법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이 세밀화들은 16세기, 17세기 인도 모굴제국의 왕족들의 궁정모습과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이 방에는 서로 대칭되는 두개의 큰 크리스탈 거울이 있다.
거울속에는 사물들이 반복적으로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데, 거울 속의 이러한 영원한 세계는 합스부르크 오가의 끝없는 번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왕녀들이 아침을 먹던 탁자가 있는 조그만 방도 전시되어 있으며, 탁자 위에는 아름다운 19세기 도자기들이 놓여 있다.

다음 편에 계속